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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세계관 정리 /기술통제/ 여성억압/ 생존윤리

by good-add 2025. 11. 19.

2024년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한 공포 스릴러, 혹은 SF 디스토피아를 넘어선 강력한 사회적 풍자이자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여성의 몸’과 ‘기술의 윤리’, ‘존재의 의미’에 관한 통찰은 충격적인 장면들 이면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영화 속 세계관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코드, 기술통제, 여성억압, 생존윤리를 중심으로 전체 구조를 정리하고 해석합니다. 서브스턴스가 제시하는 세계는 결코 허구의 미래가 아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거울일 수 있습니다.

 

서브스텐스

기술통제: 인간 욕망의 산물, 통제에서 피할 수 없는 자기 복제 사회

영화 속 ‘서브스턴스’는 생명 기술을 통해 탄생한 신물질입니다. 이를 이용하면 개인은 자기 신체의 일부로부터 ‘새로운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복제체’는 젊고 아름답고, 사회적 경쟁력을 갖춘 이상적인 자아로 설계됩니다. 겉으로는 기술의 혁신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이 기술이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인 인간상’에 맞춰 모든 인간을 표준화하고 대체하는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주인공은 본인의 의지로 서브스턴스를 선택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나이 든 여성으로서 사회적 존재감이 상실되고 있다는 압박 속에서의 강요된 선택입니다. ‘노화’는 시스템 속에서 ‘오류’로 취급되며, 기술은 그 오류를 바로잡는 수단이 됩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기술이 사회적 기준을 강화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현상과 일맥상통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기술이 단지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 ‘시스템화된 통제’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립니다. 복제체가 만들어지고 나면, 사회는 원본보다 복제된 자아를 선호합니다. 원본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며, 자연스럽게 배제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자동화 기술이 노동자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현대 기술 사회의 방향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 해방으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서브스턴스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지만, 그 기술은 곧 인간을 교체하고, 버리고, 규격화합니다.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술의 논리에 맞는 인간만 살아남는 세상. 이것이 바로 서브스턴스가 보여주는 첫 번째 디스토피아입니다.

여성억압: 선택처럼 보이는 강요, 이상적 여성성에 대한 폭력적 재현

서브스턴스의 두 번째 핵심 주제는 여성의 몸과 존재에 대한 사회의 억압 구조입니다. 주인공은 50대 여성으로, 한때 인기 있었던 방송인이었지만, 나이 듦과 함께 사회적 가치가 하락합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은 단 하나, ‘젊고 아름다운 나’를 다시 만들어 사회에 다시 ‘적합한 존재’로 복귀하는 것. 이것은 단지 ‘자기 개선’이 아니라, 시스템이 규정한 여성상에 맞춰 ‘자기 제거’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영화는 여성 억압이 더 이상 외부로부터 오는 명시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내면화된 사회 기준과 자기 대상화(self-objectification)로 이루어지는 현대적 구조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합니다. 주인공은 본인의 욕망이라고 믿지만, 그 욕망은 광고, 매체, 사회적 성공담에 의해 구성된 허구이며, 결국 스스로를 복제하고 교체하도록 압박받습니다. 서브스턴스로 복제된 ‘이상적인 나’는 남성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 여성의 모든 요소 젊음, 아름다움, 순응, 유연성을 구현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진짜 인간이 아니며, 원본의 삶과 감정, 정체성을 복제하지는 못합니다. 그녀는 정제된 상품, 즉 ‘여성의 껍데기’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이는 오늘날 패션, 성형, 필터 문화 속에서 이상화되는 여성성과 닮아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이러한 이상적 여성의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복제체는 원본을 제거하려 하고, 그녀의 삶을 차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복제체마저 피해자이자 시스템의 산물로 제시합니다. 결국 두 존재 모두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모되며,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받습니다. 이것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여성은 이 시스템에서 대체되거나 제거되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뿐이다.

생존윤리: 복제된 인간은 누구인가, 존재의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주제는 더 깊고 복잡해집니다. 복제된 ‘서브스턴스’는 감정, 판단력, 기억까지 갖게 되며, 단순한 복제체가 아닌 자율적 존재로 성장합니다. 이에 따라 관객은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복제된 존재에게도 인간의 권리가 있는가?”, “두 존재 중 누가 진짜인가?”, “존재의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가?” 서브스턴스는 인간을 복제하지만, 사회는 복제체를 진짜처럼 대하고, 원본은 점차 사라지길 요구받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충돌은 단지 신체적 자아의 충돌이 아니라, 정체성과 존엄성에 대한 충돌입니다. 원본은 ‘내 삶은 나의 것’이라 외치고, 복제체는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잘못된 존재가 아니기에 이 대립은 매우 비극적이고도 철학적입니다. 이 설정은 AI 자율권, 인간 복제 윤리, 뇌기술 개발과 같은 현대 과학이 직면한 생명윤리 문제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우리가 만든 존재가 인간의 모든 기능을 구현하고, 감정과 자율성을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만약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선별적 인간성'을 제도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는 이 생존의 문제를 효율성 중심 사회의 관점으로 풀어냅니다. 젊고 아름다우며 사회적 기준에 맞는 복제체는 더 ‘쓸모 있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인간성조차도 ‘유용성’과 ‘생산성’의 관점으로 평가되는 현실은, 오늘날 고령자, 장애인, 비표준적 인간에 대한 차별 구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서브스턴스는 묻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인간을 어떤 기준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효율과 상품성의 논리로 인간을 분류하고, 그중 일부만을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브스턴스는 충격적인 설정과 비주얼을 넘어, 매우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품은 작품입니다. 기술은 인간을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교체하기 시작했고, 여성은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니라 시스템이 원하는 이미지로 재설정되고 있으며, 인간성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계속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지금의 인간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원하는 인간으로 변형되어가고 있다”라고. 이 영화의 세계는 먼 미래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구조이며, 이미 시작된 기술적 흐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질문을 멈추면 안 됩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이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내 삶의 주권은 나에게 있는가?” 서브스턴스는 결코 가볍게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영화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의 의미와 기술의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강력한 경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