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 감독의 마지막 유작이자 대표작인 하나 그리고 둘(原題: 一一, Yi Yi)은 대만 영화의 정점이라 불릴 만큼 높은 완성도와 깊이를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2000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 영화는 대만 도시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통해 보편적인 삶의 질문을 던집니다. 도시화, 가족 구조의 변화,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 등 동아시아 사회의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 개개인의 감정과 내면을 성찰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글에서는 하나 그리고 둘이 왜 대만 영화사에서 걸작으로 남는지, 작품이 담고 있는 문화적 배경, 인물 심리, 철학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봅니다.

1. 대만의 도시 문화와 사회 변화가 담긴 배경
하나 그리고 둘의 배경은 1990년대 후반의 타이베이입니다. 이 시기는 대만이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화의 영향을 받으며, 전통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새로운 사회적 긴장이 형성되던 시기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무대 삼아, 하나의 중산층 가족을 중심으로 시대의 흐름을 조명합니다. 영화 초반, 딸 팅팅의 친구의 가족이 어머니의 장례식과 딸의 결혼식을 같은 날 치르며 혼란에 빠지는 장면은,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가족의 의례가 통합되고, 의무와 감정이 엇갈리는 모습은 곧 이 사회의 가치 체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장면은 NJ 가족이 마주할 삶의 혼란을 예고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타이베이의 도심 풍경은 빽빽한 아파트 단지, 복잡한 교통, 회색빛 실내 공간 등으로 묘사되며,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인물들의 감정과 내면 상태를 반영합니다. 에드워드 양은 카메라를 통해 도시가 주는 소외감, 익명성, 피로감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가족이라는 공간조차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서를 드러냅니다. 특히 NJ의 직장생활은 당시 대만 사회가 겪던 글로벌 자본주의의 물결을 상징합니다. 일본 투자자와의 협업, 윤리적 갈등, 기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 등은 동시대 대만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단순히 한 남성의 커리어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장 속 인간성 상실이라는 구조적 비극을 조명합니다. 이처럼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이라는 지역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제시되는 문화적 충돌과 도시의 소외감은 글로벌한 보편성을 지닙니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도시 국가들이 겪는 공통된 삶의 문제를 다루며, 동시대성을 확보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2. 세밀하게 구성된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 구조
하나 그리고 둘은 인물 중심의 서사 구조를 따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사보다는 ‘행동’과 ‘침묵’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며, 각자의 시선과 결정을 통해 인생을 풀어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주인공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모두를 ‘공동 주인공’으로 배치함으로써 ‘삶의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NJ는 가장이자 직장인으로서 가정과 사회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지만, 점점 공허함에 빠집니다. 과거 연인과의 재회는 그에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기시키지만, 그는 끝내 가족을 선택합니다. 그의 선택은 감정의 회피가 아니라 책임과 현실의 수용으로 읽히며, 성숙한 인간의 결정으로 그려집니다. 민민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며, 가족이라는 구조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 위기를 보여줍니다. 모친의 병간호, 남편과의 소통 부재, 자녀와의 거리감은 그녀가 겪는 심리적 단절을 상징합니다. 이 캐릭터는 중년 여성이 가족과 사회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 상실’을 잘 드러냅니다. 팅팅은 청소년기의 첫사랑과 죄책감을 통해, 도덕적 혼란과 성장의 아픔을 경험합니다.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주변의 파장 등은 그녀가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문턱에서 부딪히는 현실입니다. 팅팅의 서사는 청소년기의 심리적 변화와 책임의 무게를 섬세하게 표현한 대표적인 청춘서사입니다. 그리고 양양은 영화의 철학적 장치를 담당합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모르는 걸 말하죠?”, “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러한 대사는 영화 전체의 통찰을 요약하는 말이자, 관객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면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점에서 양양은 ‘철학자’ 혹은 ‘감독의 대변자’로 기능합니다. 이렇듯 하나 그리고 둘은 다양한 세대, 성별, 역할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삶의 복합성과 감정의 깊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단 한 명의 드라마가 아니라, ‘모두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영화적 성취가 매우 큽니다.
3. 철학적 질문과 열린 결말이 주는 메시지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줄곧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둡니다. 하나 그리고 둘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이나 빠른 전개 없이, ‘일상의 축적’으로 감정을 쌓아갑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삶을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제목 '一一'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또 다른 하나를 부르고, 각각의 삶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개인의 고독한 인생이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인간 존재의 연결성과 단절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누구도 완전히 치유되거나, 완전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관객은 그 이후를 상상해야 합니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에드워드 양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 즉 결론보다 과정, 정답보다 질문을 중시하는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양양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입니다. “할머니, 내가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나는 할머니의 삶을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모두의 삶을 사진으로 찍어 보려 해요.” 이 대사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선언이자, 인간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감정과 메시지는 단지 스토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 밖의 관객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단순히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이는 모든 위대한 영화가 가져야 할 조건이자, 이 작품이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 영화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 영화사의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한 작품입니다. 문화적 정체성, 도시화의 그늘, 가족의 구조, 인간의 내면, 철학적 성찰 등 수많은 층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영화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예술적 고찰입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증명했고, 이는 관객 개개인의 삶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지금, 이 영화를 처음 접하거나 다시 감상하는 누구라도,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 그리고 둘은 단순히 ‘대만 영화의 걸작’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묻는 위대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