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하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고,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황금곰상까지 거머쥔 이 작품은 동양의 전통 정서와 보편적인 인간 감정의 교차점에서 세계적인 공감을 얻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넘어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숨어 있는 정체성, 욕망, 성장,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다층적인 상징성 때문입니다. 본 글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대표적인 상징 요소들을 문화적·철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왜 이 작품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분석합니다.
1. 이름과 정체성 상실: ‘센’이 된 치히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중요한 상징은 이름의 상실입니다. 주인공 ‘치히로’는 신들의 목욕탕 세계에 들어서자 유바바에게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센(千)’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을 빼앗기고 존재가 흔들리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이름은 인간의 사회적, 심리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혼란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빼앗긴 치히로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워 행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점점 자신의 목소리와 선택을 회복하며 점차 센에서 치히로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탈출기가 아닌, 자아를 되찾는 ‘심리적 귀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특히 동서양을 막론한 현대 청소년기나 사회 초년생들에게 강한 공감을 이끕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타인이 정한 이름과 역할 속에서 살아가는 시기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쿠의 서사 또한 이를 보완합니다. 하쿠 역시 유바바에게 이름을 잃고 정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며, 치히로와 함께 자신이 원래 ‘코하쿠 강의 정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이처럼 치히로와 하쿠는 각각 상실과 회복의 축을 나눠서 표현하며, 인간이 자아를 잃고 방황하다가도 결국 ‘이름을 되찾는 일’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상징적 진리를 전달합니다.
2. 가오나시: 공허한 현대인의 자화상
『센과 치히로』 속 상징 중 세계적인 상징 캐릭터로 자리 잡은 존재가 바로 ‘가오나시(No-Face)’입니다. 얼굴도 없고 말도 하지 않던 이 존재는 욕망의 공간인 목욕탕 안에서 점차 변모하며 현대인의 고독, 정체성 결핍, 외부 인정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캐릭터입니다. 가오나시는 처음에 조용하고 순박한 존재로 등장하지만, 주변에서 그에게 돈과 음식으로 환대를 베풀자 점차 탐욕스러운 괴물로 변화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복사하며, 자신 안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외부의 무언가로 채우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진정한 연결은 치히로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로부터만 가능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치히로는 가오나시에게 음식을 나누되 그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며, 감정적으로도 거리를 유지합니다. 결국 가오나시는 치히로의 따뜻한 배려와 수용을 통해 더 이상 폭주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특히 소셜미디어, 소비, 외모 중심 사회에서 ‘진짜 나’를 잃고 타인의 반응에 의존해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어, 가오나시는 단순한 캐릭터 그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는 얼굴이 없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존재이며, 감정적 연결의 결핍이 얼마나 쉽게 욕망과 폭력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상징체입니다. 치히로가 그를 거절하지 않고 함께 기차를 타고 카마지의 손녀 ‘젠이바’에게 데려가는 여정은 공허한 존재를 치유로 인도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변화시키기보다, 인정과 수용의 태도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상징은 서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통용되며, 가오나시라는 캐릭터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욕망과 자연의 회복: 더러운 강의 신과 코하쿠
『센과 치히로』는 전반적으로 ‘욕망의 공간’에 들어간 치히로가 정화를 통해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세계는 풍요롭고 활기차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 오염, 자연 파괴, 권력 남용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더러운 강의 신’ 에피소드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치히로는 욕창처럼 더럽고 악취 나는 괴물 손님을 목욕시켜야 하는 일을 맡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이 일을 치히로는 용기를 내어 해내며, 그 과정에서 더러운 괴물이 사실은 오염된 강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의 몸 안에는 폐기물, 자전거, 오물 등이 가득했고, 이를 제거하자 본래의 정령으로 돌아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괴한 판타지 장면이 아니라, 현대 문명이 자연을 어떻게 오염시켰는지에 대한 환경적 은유로 해석됩니다. 또한 하쿠가 본래 ‘코하쿠 강’의 정령이라는 설정은, 치히로가 어릴 적 물에 빠졌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름을 기억해 주는 순간과 연결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억 회복의 서사 구조를 넘어서, 인간이 잊어버린 자연과의 관계,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강과 심리적 유대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하쿠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치히로의 행동은 자연을 이름으로 다시 호명하고, 그 의미를 회복하는 행위이며, 이는 동양적 세계관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영화에서의 ‘욕망’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정체성을 잃은 인간과 자연의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이를 다시 잇는 것은 기억, 정화, 돌봄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서정적인 메시지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모든 세대에게 울림을 주는 철학적 서사가 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많은 관객에게 인생 영화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지닌 강력한 상징 언어와 정서적 진정성,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뛰어넘는 보편성 때문입니다. 이름과 정체성, 욕망과 공허함, 환경과 인간의 관계, 수용과 회복의 여정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주제이며, 이 영화는 이를 아름답고 섬세한 판타지 세계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통해 동양적인 사유 방식과 서사 구조를 기반으로 하되, 서양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시각적 상징과 감정적 코드를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넘어 세계적 애니메이션의 기준점이 되었고, 디즈니의 방식과는 또 다른 ‘정서의 깊이와 해석의 여백’을 제공하는 영화적 언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센과 치히로』는 어릴 때 보면 마법 같은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보면 자아를 잃고 방황하던 나를 치유해 주는 내면의 여정으로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가 사랑한 상징성’의 진짜 의미입니다. 그것은 국경도 언어도 시대도 초월한, 인간 존재의 핵심에 대한 사려 깊은 탐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