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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가치 /시청각 예술/다양성과 포용/인간 내면

by good-add 2025. 9. 6.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은 단순한 흥행작 그 이상이다. 2017년 개봉 당시에는 신선한 감동과 OST로 전 세계 팬을 사로잡았고, 지금 다시 봤을 때는 사회적 메시지와 캐릭터의 서사구조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감동, 예술성,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며 ‘시간이 지나도 가치 있는 영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위대한 쇼맨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쇼맨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 뮤지컬 영화의 미학

뮤지컬 영화는 기본적으로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위대한 쇼맨은 이 기본을 뛰어넘는 연출을 보여주며, 시청각 예술로서의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구현한 대표작이다. 처음 시작하는 장면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영화는 단 한순간도 시선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카메라의 빠른 움직임, 배우들의 리듬감 있는 동선, 안무와 세트, 의상과 조명이 환상적으로 맞물린다. 대표적인 장면인 오프닝 곡 “The Greatest Show”는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도, 한 편의 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영화관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듯한 연출은, 뮤지컬 영화의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음악적 측면에서도 위대한 쇼맨은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스타일과 현대 팝 스타일을 절묘하게 믹스하여, 고전적인 감성과 현대적인 트렌드를 동시에 반영했다. ‘This Is Me’는 영화의 상징적인 주제가로 자리 잡았으며, ‘Never Enough’는 감정의 절정을 표현하는 발라드로, ‘Rewrite the Stars’는 감정적 로맨스를 음악으로 풀어낸 명곡이다.

또한 음향 편집 역시 매우 탁월하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곡마다 배경음과 효과음이 곡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켜준다. 예를 들어, ‘Come Alive’ 장면에서는 퍼커션과 브라스 사운드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며, 실제 서커스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사운드의 미학은 관객이 단지 ‘보는 영화’가 아닌, ‘경험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의상과 미술도 빠질 수 없다. 19세기 중엽을 배경으로 하되,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디자인은 위대한 쇼맨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든다.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말해주며,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서사의 일부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바넘이 입는 빨간 정장은 쇼맨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앤 휠러의 분홍빛 곡예 의상은 그녀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위대한 쇼맨은 ‘보는 재미’와 ‘듣는 감동’이 완벽하게 융합된 작품이며, 지금 다시 봐도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 성취 모두를 경험할 수 있는 영화로 손색이 없다.

다양성과 포용의 메시지, 지금 더욱 중요한 이유

위대한 쇼맨이 단순한 뮤지컬 영화 그 이상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핵심 이유는 바로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영화는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모, 인종, 성별, 장애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움으로써,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부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역시 수염 난 여성 레티가 "This Is Me"를 부르며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뮤지컬 넘버가 아니다. 이는 ‘존재 선언’이다. “이것이 나다. 나는 숨지 않겠다. 나는 당당하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며 울지 않은 관객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이 곡이 전하는 감정과 파급력은 크다. 특히 LGBTQ+ 커뮤니티나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이 장면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특정 집단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름’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외모로, 어떤 사람은 학력이나 배경으로, 어떤 사람은 사고방식의 차이로 차별을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메시지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고유함’이라는 사실. 그 누구도 표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는 것. 이 영화는 이를 감동적이고도 강렬하게 전한다. 또한 영화 속의 단원들은 단순한 희화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각자 자신만의 내면을 가지고 있고, 서사와 감정을 표현한다. 카메라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정중하며, 절대 그들의 ‘특이함’을 소비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윤리적 태도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대는 다양성의 시대다. 하지만 진짜 다양성은 단순히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쇼맨은 여전히 유효하며, 어쩌면 더욱 절실한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 메시지는 오히려 지금 더 필요하다.

바넘이라는 인물을 통한 인간 내면의 양가성 탐구

위대한 쇼맨은 단지 이상적인 세상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묘사한 작품이다. 중심 인물인 바넘은 전형적인 ‘성공을 꿈꾸는 인물’로 시작한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며, 평범한 인생을 거부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성공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불안’, ‘불완전함’은 더 현실적이다. 바넘은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성공을 위해 때로는 가족을 뒤로 하고, 동료들을 외면하며, 엘리트 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의 선택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이해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바넘은 ‘무결점 주인공’이 아니라 ‘고민하고 실수하는 인간’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감동은 바넘이 실수를 ‘인정’하고, 그로 인해 진짜 성장을 경험한다는 데 있다. 그는 끝내 화려한 무대가 아닌, 가족의 따뜻함과 동료의 존재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가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은,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 치유의 힘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장면은 수많은 관객에게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바넘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경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과 중심의 사회,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자기 존중감,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본래의 가치를 잊고 살아간다. 바넘의 여정은 이 모든 현실을 대변하며, 영화 속 허구의 서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바넘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실제 역사 속 인물 P.T. 바넘과의 차이다. 실존 인물은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착취와 왜곡의 상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인물의 철학과 상상력, 변화 가능성에 집중한다. 이로 인해 현대적인 가치 해석이 가능한 인물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인간적인 서사는 위대한 쇼맨을 단지 감성적인 뮤지컬이 아닌, 삶과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끌어올린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자기반성과 회복의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위대한 쇼맨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다. 수많은 뮤지컬 영화 중에서도 이 작품이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화려한 장면 뒤에 담긴 인간성과 사회성 때문이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누구나 자기만의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성, 포용, 용기, 실패와 회복, 사랑과 인정, 그리고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힘. 이 모든 가치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위대한 쇼맨은 단순히 "한때 유행했던 영화"가 아닌,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