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맨(Dogman, 2018)’은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으로, 유럽 사회의 불평등, 폭력, 그리고 무력함을 치밀하게 그려낸 범죄 드라마입니다. 개를 돌보는 착한 남자 마르첼로와 지역 폭력배 시몬체의 관계를 중심으로, 억압과 분노, 그리고 비극적 복수를 통해 현대 유럽의 사회적 그림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그맨이 던지는 메시지를 폭력, 정의, 무기력이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1. 폭력,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적 병리
‘도그맨’은 폭력을 극적인 요소로 소비하는 대신, 그것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인공 마르첼로는 개를 손질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조용한 인물입니다. 그는 범죄와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에는 이미 조용한 폭력이 침투해 있습니다. 바로 동네를 장악한 지역 폭력배 시몬체의 존재입니다.
시몬체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그는 법과 질서가 무너진 지역의 공백을 채우는 비공식 권력자이며, 이른바 ‘힘의 논리’로 동네를 지배합니다. 경찰조차 손을 쓰지 못하는 그 앞에서 주민들은 침묵하거나, 마르첼로처럼 순응할 뿐입니다. 폭력이 반복되면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일상화된 폭력은 공동체의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마르첼로는 시몬체의 폭력에 직접 가담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동조하며 죄의식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 과정은 현실의 유럽 사회, 특히 경제적 소외 지역에서 반복되는 패턴과 닮아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방치된 지역은 법의 사각지대가 되며, 개인은 자발적 복종과 굴복 속에서 폭력을 견디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극적이지 않게, 무덤덤하게 그리며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줍니다.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폭력을 미화하거나 판타지 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력하고 현실적인 폭력을 보여줍니다. 시몬체가 마르첼로를 때리는 장면, 다른 이들을 위협하는 장면은 감정적 고조나 음악 없이 그저 ‘사실’처럼 제시됩니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폭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도그맨’은 폭력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비판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한 세계, 더 이상 규탄보다 체념이 앞서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유럽 일부 지역에서 현실로 존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2. 정의,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단어
‘도그맨’에서의 정의는 이상이 아닌 허상에 가깝습니다. 마르첼로는 끊임없이 정의를 찾습니다. 그는 시몬체에게 맞아도 참고, 가게를 부수고 돈을 뺏겨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시몬체를 두둔하고, 자기가 당한 불이익조차 감췄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겁함이 아니라, 그 나름의 ‘정의’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점차 이 정의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공동체는 마르첼로의 정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시몬체의 하수인’으로 여기며 배척합니다. 법적 정의는 시몬체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며, 마르첼로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의 하층민 커뮤니티에서도 종종 법과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지역에서는 사적 복수, 자력 구제가 오히려 정당화되며, 이때 발생하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체념입니다. ‘도그맨’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무기력한 정의를 고발합니다.
결국 마르첼로는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선한’ 정의가 아닌, 뒤틀리고 왜곡된 형태입니다. 그는 시몬체를 제거하지만, 그 결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무시하고, 공동체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르첼로는 시체가 된 시몬체를 끌고 광장에 앉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정의를 실현했음에도 그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외로워졌습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묻습니다. ‘정의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물음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습니다.
3. 무기력, 끝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도그맨’이 말하는 사회의 가장 깊은 그림자는 바로 무기력입니다. 마르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어디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착하고 정직한 시민이며, 아버지이고, 이웃입니다. 하지만 그 착함은 세상의 무게 앞에 너무 약했고, 그 정직함은 결국 그를 파멸시켰습니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무기력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경찰은 시몬체를 제지하지 못하고, 이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마르첼로는 복종하다 끝내 폭발합니다. 하지만 그 폭발은 어떤 희망도 낳지 않습니다. 폭력의 구조를 재현할 뿐, 개선하거나 탈출하지 못합니다.
이 무기력은 유럽 사회 곳곳에 퍼진 구조적 고립을 반영합니다. 이민자 밀집 지역, 실업률이 높은 도시 외곽, 교육·복지 인프라가 붕괴된 지역에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조차 갖지 않게 됩니다. ‘도그맨’은 마르첼로라는 인물을 통해 그런 감정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또한 무기력은 단지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감정 문제로 확장됩니다. 마르첼로는 딸을 사랑하고, 개를 돌보고, 작은 가게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는 마지막에 무엇을 위해 시몬체를 죽였는지조차 혼란스러워 보이며, 관객도 그 감정에 함께 빠져들게 됩니다.
감독은 이 무기력을 해소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 주인공을 밀어 넣고, 관객이 함께 느끼게 만듭니다. 이는 장면과 연출, 그리고 침묵을 활용한 편집을 통해 완성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무겁고, 쉽게 잊히지 않는 감정을 남깁니다.
‘도그맨’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오늘날 유럽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병폐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작품입니다. 영화 속의 폭력은 일상이 되었고, 정의는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결국 무기력 속에 살아갑니다. 마르첼로의 이야기는 곧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고, ‘도그맨’은 그러한 직면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걸작입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단순히 감상이 아닌 질문과 성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