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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은 왜 악해졌나? 심리학으로 보는 악의 구조 <빌런의 속사정> 리뷰

by good-add 2025. 4. 8.

『빌런의 속사정』은 그동안 단편적인 시선으로 소비되어 온 ‘악역’ 캐릭터의 내면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한 교양서다. 이 책은 단지 빌런이 된 이유를 궁금해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 사회 속 인간의 분노, 소외, 상처와 연결시켜 악의 본질을 조명한다. 드라마, 영화,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악역 캐릭터에 우리는 왜 이토록 빠져드는가? 이 리뷰에서는 『빌런의 속사정』이 전하는 빌런의 탄생과 인간 심리의 연결 고리를 깊이 있게 풀어본다.

 

빌런의 속사정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빌런의 속사정』은 첫 장부터 독자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이는 단순히 문학적 질문이 아니라 심리학과 사회학, 철학 전반에서 오랜 시간 논의되어 온 주제다. 책은 이 질문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빌런 캐릭터와 실제 인간 사례를 통해 “악은 사회적 구조와 경험의 산물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작품 속 대표적인 빌런 사례로는 영화 『조커』, 드라마 『더 글로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속 엘사(일부 시청자에게는 반영웅 또는 빌런으로 읽힌다) 등을 제시하며, 그들의 삶에 존재했던 결핍과 트라우마를 상세히 분석한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 사회적 배제, 인정받지 못한 노력 등은 심리학에서 ‘억압된 감정’과 ‘대상 상실’로 분류되며, 이러한 상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노, 복수심, 왜곡된 자아로 발전한다.

빌런이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상처받은 인격체로 이해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본다. 책은 “악역은 인간 내면의 그림자이며, 모두의 내면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칼 융의 ‘그림자 자아’ 개념과도 맞닿아 있으며, 우리가 빌런에게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근거가 된다.

『빌런의 속사정』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독자에게 빌런을 향한 감정이입이 단지 스토리텔링의 장치가 아니라, 내면의 이해를 위한 통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빌런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콘텐츠 소비자들이 악역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 속 ‘빌런 서사’가 주목받는 이유

최근 수년간 콘텐츠 시장에서 ‘악역 중심의 이야기’는 뚜렷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빌런의 속사정』은 이 현상에 대해 사회문화적 배경과 함께 분석한다. 과거 영웅 서사가 명확한 선과 악의 구도로 구성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더 복잡하고 모호한 캐릭터에 끌린다. 이는 현실 사회 역시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현대인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 사회적 고립이 빌런 서사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시킨다고 진단한다. 선한 의도조차 왜곡되거나 배척되는 현실,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오히려 ‘규범을 파괴하는 인물’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프런트맨이나 『기생충』의 기택, 『베놈』의 에디 브록처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들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빌런의 속사정』은 이와 같은 트렌드를 “공감의 확장”으로 해석하며, 현대인이 가지는 ‘정의’와 ‘악’의 개념이 얼마나 유연해졌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책에서는 SNS 시대의 ‘사이버 빌런’ 개념도 조명한다.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하루 만에 뒤집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손쉽게 누군가를 ‘악역’으로 낙인찍고, 때론 그 빌런 서사를 소비하면서도 스스로도 그러한 구조 속에 노출된다. 이러한 인식은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빌런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연결되며, 빌런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더욱 강화한다.

결국 『빌런의 속사정』은 빌런이 단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 ‘사회적 거울’ 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때로 나의 얼굴도 담겨 있다.

악역에 끌리는 우리의 심리, 그리고 이해의 의미

빌런에게 감정이입하는 시대다. 단지 매력적인 외모나 설정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빌런을 통해 ‘이해받지 못했던 나’를 본다. 『빌런의 속사정』은 이런 감정의 메커니즘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인간은 원초적 욕망과 억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사회적 틀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지나친 억압 끝에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한다. 빌런은 이 경계에서 일탈을 선택한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내면 깊숙이 억눌러 온 욕망을 대리 실행하는 존재로 기능하며, 동시에 해방감과 죄책감을 함께 불러온다.

책은 “빌런은 인간 본성의 극단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한 감정의 집약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이 공감으로 바뀔 때,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란,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맥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빌런의 속사정』은 빌런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 내면의 회복과 성찰 가능성을 제안한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내 안의 빌런 체크리스트’나 ‘감정 회로 복기 노트’는 독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책은 단지 콘텐츠의 트렌드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의 해석자’로서의 독자에게 더 나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그 캐릭터에게 끌렸을까?”, “내가 분노를 느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빌런의 속사정』은 그렇게 우리의 내면과 조우하게 만든다.

『빌런의 속사정』은 단순히 빌런의 이야기만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 심리의 복합성과 사회 구조 속 갈등, 그리고 우리가 공감하는 감정의 본질을 탐색한다. 빌런은 악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서사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자기 성찰의 계기로 확장된다. 현대 사회에서 ‘악’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빌런의 속사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지금 당신이 빠져든 그 빌런의 서사, 그 속에는 당신의 이야기도 숨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