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서양고전의 내용을 다시 살피고, 그 서술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묻는 책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는 인문학의 뿌리이자 민주주의, 철학, 법치 등의 토대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타자(여성, 노예, 외국인)의 침묵 위에 쌓인 질서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고전 속 영웅과 철학자들만 조명해 온 기존 독서법에서 벗어나, 소외된 목소리와 맥락을 통해 서양고전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는 비판적 독법을 제시합니다. 본 글에서는 그로사의 핵심 가치인 고전 해체, 독해틀 전환, 역사 재의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고전의 권위 해체: 중심에서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다
우리는 고등학교 교과서와 인문학 입문서에서 고대 그리스·로마를 ‘문명의 시작점’처럼 배우며, 아테네의 민주주의, 로마의 법 체계, 철학자들의 위대한 사상을 이상화합니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키케로의 연설문 등은 진리와 이성, 정의의 근거로 간주되며 교육되고, 이 인물들은 문명의 상징이자 서구 이성의 표본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고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어떤 목소리를 누락하고 있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고전을 단지 찬양하지 않고,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성, 노예, 외국인을 배제한 제한적 체제였고, 플라톤의 철인 정치도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통제사상이었습니다. 이런 통찰을 통해 우리는 고전을 다시 읽는 눈을 갖게 됩니다. "왜 이 목소리만 살아남았는가?", "그 시대 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고전 읽기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중요한 사고 전환입니다.
이러한 시선 이동은 단순한 도발이나 반골적 사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고전의 가치—즉 질문을 던지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회복하는 행위입니다. 중심인물에만 집중하던 고전 독서가 구조와 맥락, 권력관계까지 아우르는 입체적 해석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고전을 '생각의 틀'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독해틀의 전환: 왜 그렇게 쓰였는가를 묻는 독서
대부분의 독자는 텍스트를 읽을 때 '무엇이 쓰였는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왜 그렇게 쓰였는가'를 묻습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내용이 아닌 의도와 구조에 주목하는 독법을 제시합니다. 이는 곧 텍스트가 단순한 정보 전달물이 아니라 권력과 가치, 정치와 이념이 담긴 사회적 산물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키케로의 연설문은 로마 공화정을 위한 아름다운 수사로 읽힐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류 귀족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정치적 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정의로운 질서'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수 시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엘리트만이 통치권을 갖는 권위주의적 체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글의 외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정치적 맥락을 함께 읽는 능력이 바로 비판적 독해틀입니다.
그로사는 학생과 독자에게 "이 문장은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이 말의 이면에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가?", "누가 침묵당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는 곧 텍스트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재구성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으로 이어지며, 인문학 글쓰기와 논술에서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또한 이 책은 단일 관점이 아닌 다양한 시각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구성을 통해 한 사건을 둘 이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의미를 체감하며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독자에서 생산하는 독자로 전환하게 됩니다.
역사재조명: 현재를 위한 고전 읽기의 실천
역사란 과거를 기록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과거를 낡은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성찰하게 만드는 실천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 책이 단순히 그리스·로마의 제도와 사상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의 시민권, 정치참여, 평등, 법치 등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도록 구성된 이유입니다.
예컨대 아테네의 시민권 개념은 오늘날 사회의 이민자 문제, 성소수자 권리, 사회적 약자 포용과 같은 이슈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로마의 공공재 관리와 통제는 오늘날의 세금제도, 공공복지, 정부의 권한과 견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독자는 현대사회를 보는 눈을 넓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독해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조명은 고등학생이 수행평가나 논술을 준비할 때, 통합형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텍스트가 됩니다. ‘역사’라는 교과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윤리’, ‘정치’, ‘철학’과 연결되는 이 책의 구조는 융합 교육에도 탁월한 기반이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고전을 해석하는 일이 단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를 성찰하고 내 삶의 원리를 찾는 지적 실천임을 일깨웁니다. 교과서에 나온 연표나 연설문을 넘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나의 언어로 다시 쓰는 과정—그것이야말로 서양고전의 현대적 독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고대 문명의 유산을 찬양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전을 만든 역사적 배경, 서술 방식, 소외된 시선에 집중하며, 고전을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고전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고전을 암기하거나 따라 읽는 수동적 독자가 아닌, 고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오늘과 연결하는 능동적 독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고전 독서에 새로운 시선을 더하고 싶다면, 이제는 ‘거꾸로’ 읽을 때입니다.